다들 아는 대로, 국군 병사의 피복 지급규정은 입대 초 전투복 2벌,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신품 한 벌을 더 받는 것이 고작입니다. (폐품 중 상태 괜찮은 것을 자대에서 예비로 받는 것은 제외한 겁니다.) 그나마 1년이 지난 뒤 새 전투복을 받는 경우는 적어도 저는 직접 겪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대대에서 새 전투복을 수령한 병사는 상당수 봤습니다.) 제대한 지 벌써 8년이 다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저는 전투복 지급이 이뤄지지 않아서 결국 돈 주고 사서 입는 비극을 겪었지요. 제가 예비군 훈련을 갈 때 입었던 전투복은 제가 99년 가을에 사비로 샀던 새 전투복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건 좀 우스운 일입니다. 국군의 현용 전투복은 약 6개월간 6회 이상 세탁을 하게 되고, 그 정도 세탁을 하고 나면 표면의 대 적외선 코팅이 거의 다 사라져서 사실상 현용 위장전투복으로서의 가치를 상당부분 잃게 됩니다. 상대가 북한군이라면야 뭐 어쨌든 상관없는 일이지만. 여기에 국군은 휴가복 및 정복이 따로 없는 관계로 전투복을 잘 다려서 줄을 세우고 각을 잡아 이것을 휴가복으로 쓰고 있는데, 이게 또 문제가 되죠. 다림질 한 번이면 전투복의 적외선 위장기능은 한 방에 제로가 되거든요. -_-
결국 전투복 한 벌의 수명은 6개월 정도고, 처음 지급받는 전투복 2벌 중 1벌은 휴가용으로 쓰게 되니 실질적으로 병사가 입고 다니는 전투복이 위장복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는 기간은 단 6개월에 불과한 셈입니다. (실제로는 더 짧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신규 수령하는 전투복도 받자마자 새로 휴가복으로 쓰고, 기존 휴가복을 전투복으로 전용하고 있으므로 그 6개월이 지난 후의 병사는 새 전투복을 수령하더라도 여전히 적외선 차폐기능은 없는 위장복을 입고 다니게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_-;
그나마 신형 전투복이 조만간 등장할 것이고, 이것은 기존의 약 2배 정도 횟수를 세탁해도 코팅이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그 기간은 대략 2배 정도로 연장되게 됐습니다. 전투복의 가격은 그만큼 올라가는 것 같지만, 어차피 그동안의 물가상승율을 감안하면 전투복의 가격이 그다지 감당 못 할 만큼 비싸졌다고 하기도 어려운 만큼 그냥 그러려니 할 수 있는 문제. 위장패턴의 변화 역시 병사에게 제공하는 위장효과를 혁신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으니 그 정도 비용은 충분히 감수할 만합니다.
... 그러나, 이런 것도 여전히 다림질 문화가 살아있는 한국군이라면 십상입니다. 적어도 전투복 2벌 중 1벌은 확실히 다림질을 하게 되니, 나머지 1벌로 나머지 기간을 버텨야 하거든요. 길어야 1년. 뭐, 그나마 1년차가 됐을 때 새 전투복 1벌을 수령할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것 역시 휴가복으로 전용돼 버리면 결국 상병 초봉 무렵부터 병사의 전투복은 위장효과가 반감된 상태가 되고 맙니다. -_-;;;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사실 휴가복으로 삼을 수 있는 다른 군복의 별도 지급입니다. 휴가복이라면 보기에 때깔이 나야 하니 비싼 옷을 주어야 할 것 같지만, 사실 절대 그렇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전투복보다 싸기 십상이죠. 전투복은 기본적으로 적외선 코팅과 위장무늬 프린팅, 방염처리 등 옷감부터가 특수재질이기 때문에 원가가 비싸고, 디자인 역시 전투목적에 맞는 편이어서 이런저런 잔손질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만, 휴가복이라면 전투복과는 달리 원단의 특수처리가 필요가 없고, 옷의 제작에 있어서도 전투복 특유의 복잡다단한 처리를 거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_-
그 휴가복이 반드시 미군의 정복이나 국군 해병대 정복처럼 신사복 스타일일 필요도 없습니다. 육군에서 이미 행정전문부대 - 주로 국방부 및 육군본부 - 에서 지급하고 있는 근무복을 그대로 전용해도 문제 없습니다. 척 보기에 군복처럼 보이고, 적어도 헐렁헐렁한 전투복보다는 군인으로서의 절도를 살리기 더 좋은 디자인입니다. 좀 촌스러운 색상은 짜증나긴 하는데, 이거야 원단 염색을 바꿔 주는 것만으로도 간단하게 해결되는 문제. 폼 안 나는 서브듀드 계급장과 사단마크도 휴가복에서라면 화려한 원색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보기도 좋을 겁니다. 여차하면 계급장은 금속제를 달아줘도 되겠네요. 명찰은 플라스틱으로 파서 달아주고. 게다가 국군이 그렇게 좋아하는 다려서 줄 잡기는, 단색 군복에선 무지 때깔이 잘 삽니다. (상대적으로 위장복은 다려놓으면 어째 느낌이 참 꽝입니다. 코팅하고 프린팅 눌어붙은 티도 너무 잘 나고. -_-)
휴가복은 전투복보다 싸게 공급할 수 있고, 굳이 복수로 지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차피 휴가 때만 입거나 행사 때만 입을 옷이므로, 1벌만 공급하면 됩니다. 전투복 2벌과 휴가복 1벌, 그리고 1년 뒤에 전투복 1벌 추가 공급. 이 정도면 적어도 병사의 전투효율과 휴가시 사기진작에는 상당한 도움이 될 겁니다. 대략 1년에 22~23만(매년 입대하는 병사 인원이 그 정도입니다. 부사관 이상은 사비 또는 국비보조로 정복 사 입게 하는 체제도 좋을 것 같습니다.) 벌 정도 새로 옷을 사들이면 될 일이죠. 벌당 비싸게 쳐서 5만원 잡고 약 120억 원 정도 예산을 증액하는 것으로 해결될 일입니다. 작은 돈은 절대 아닌데, 못 내 줄 돈 역시 절대 아닙니다.
... 뭐, 망상이자 푸념입니다. 노무현 행정부 말기에 이 문제가 한 번인가 제기된 적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때도 그냥 시큰둥하게 넘어갔다고 알고 있으므로 - 근데 그때는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촌스런 미군식 베레모 채용을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 , 안 그래도 돈 아끼는 데 혈안이 된 MB 행정부에서 이걸 할 리는 더더욱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미 개발이 끝난 신형 전투복 채용조차도 돈 아낀다고 안 할지도 모르겠고요. 흑흑.
- 혁이가 -
P.S : 사실 개인적으로 국군의 근무복 겸 정복으로 사병과 장교 모두에게 독일군 M44 스타일의 아이크 재킷을 핵심으로 하는 갈색 색상의 모직 근무복이 지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50년대 우리 국군의 장교 정복하고도 비슷한 스타일인데, 이게 사실 의외로 한국인이 입으면 무지 카리스마 있어 보입니다. 50년대 국군 장교복과 지금 국군 장교복을 비교하면, 솔직히 50년대가 낫다는 생각입니다. -_-
# by 윤민혁 | 2008/05/16 19:34 |
군사 이야기 |
트랙백 |
덧글(33)